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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잠에 푹 빠진 순한 양입니다.
;ㅁ; by 봉인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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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귀찮음과 지루함과 나태함으로 연성된 봉인해제입니다.
이곳은 드림하트 커뮤니티(http://hirotr.ncity.net/)에서 연재중인 멀티노벨[하트헌터]의 원본이 있는 곳입니다. 인기척이 별로 없는 블로그이긴 합니다만 취미 생활겸 조금씩 써나가고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토리는 드림하트 커뮤니티 소설게시판에 공지에 있는 설정집을 토대로 짜여져있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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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요약 일상으로 돌아온 카인,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의문이 남았지만 해결은 뒤로 미룬다. 한편, 퀸즈타운 동쪽 외곽의 숲에 있던 한 발전소에서 의문의 단체가 발전소가 습격당한다. 발전소를 습격한 그들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2011년 7월 3일 월요일 오후 1시, 퀸즈타운 동쪽 C지역 4지구 Hearts 사무실]
정신을 차린 것은 오후 1시쯤이였다. 알베로의 손바닥이 다가오는 걸 본 이후로 기억이 없다. 머리는 잊어버렸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말해야 겠는가...? 지금,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왜냐고? 아, 그래. 나 퇴원빵 맞고나서 사무실 의자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다고.
"휴..."
왜 한숨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알거 같다랄까 나의 퇴원을 환영해주는 건 고맙지만 폭력은 사절이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녀석들은 탁자에 둘러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무언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루루의 텐션이 물 오른거 보니 생각대로 풀려가는 모양이였다. 그와 반해 루시안과 리즈나는 세상이 다 끝난 것 처럼 절망모드. 알베로는 언제나의 포커페이스랄까. 녀석이 생각하는 게 좀처럼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단 말이야. 보아하니 알베로 녀석 무언가 히든 카드를 숨겨놓은듯 한데...루루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이네. 랄까, 녀석들... 재미있어 보이는데?
"무슨 게임에 그렇게 열중 하고 있어?" "아아! 카인 오빠, 지금 말하지 마요. 중요한 때니까." "어...? 아...알았다."
재미있어 보이길래 같이 해볼까 하고 루루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럴 타이밍이 아니였나보다. 루루가 알베로의 손에 들려있는 카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루루의 시선을 받는 알베로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알베로의 손에 들려있는 카드는 2장, 루루는 1장. 아무래도 녀석들 도둑잡기를 하는 모양인거 같은데 1:1 상황이 되버린듯 하다. 그나저나 루시안이랑 리즈나는 왜 이렇게 표정이 안좋은거지? 자기들은 모두 카드를 버려서 끝났을텐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나?
"어이, 루시안.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냐?" "지금 내 눈 앞에서 내 목숨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태평하게 있으라고?" "목숨이라니? 왠 헛소리야?" "하아..."
루시안이 한숨을 크게 쉬더니 귓속말로 말해왔다.
"그게 말이지, 이번 게임에서 진 사람이 저녁을 차리기로 내기를 했거든..." "그래서?" "그래서라니, 남은 사람을 보라고." "아...?"
순간, 이해했다. 루시안과 리즈나의 표정이 왜 굳어있는가를.
"아, 이건 확실히 재앙인데. 오늘은 조기 퇴근할까나? 오늘따라 왠지 스리에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지는..." "야, 카인, 나도 껴주라. 오늘 저녁만큼은 피하고 싶은걸. 오랜만에 미소녀가 해주는 밥이 먹고싶은데." "생각해두지."
루시안이 간곡히 부탁을 해오니 거절을 할 수도 없고... 너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야. 그런고로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어볼까.
"어이, 거기 바보 남자 2명, 나도 데려가주면 안될까? 아무리 위가 좋은 나라도 루루가 만든 건..." "헤이, 리즈나? 루루가 듣겠다 소리 낮춰가며 말해." "아항...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리즈나도 불안한가보다. 이해한다. 루루의 요리솜씨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아, 녀석의 프라이드가 손상될까봐 말은 안하고 있었는데. 루루의 음식솜씨는 꽝이야. 아니, 꽝 정도가 아니라 살인병기 수준이라고? 간단한 예로 레몬을 너무 많이 넣어서 산이 높다고 수산화나트륨으로 중화시키겠다고 음식에 부었다고? 저런 음식을 먹게된다면 위에 구멍이 뚫릴지도... 이것 말고도 다양한 사례가 있었지만 떠올리기도 싫다. 내가 살아있던게 다행이지... 아, 이건 절대로 루루 본인에게는 비밀이야. 조신한 여성상을 추구하는 루루에겐 요리스킬렙이 낮다고 하는건 트라우마를 건드는 일이라고? 절대로 말하지마라. 죽어도 무덤까지 가져가라. 뭐, 그런고로 오늘의 패자가 루루가 아니길 빌어야겠다. 루루에 비해 알베로는 요리에 소질이 있는 녀석이니까. 그래서 나와 리즈나 루시안은 삼일동체가 되어 알베로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제발...제발 이겨라!! 루루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망설이더니 결정한 듯 손을 뻗어 알베로의 왼쪽 카드를 집어들었다.
"에잇! 아! 또..."
아무래도 조커를 뽑아든 모양이다. 손에 든 카드를 잠시 등 뒤로 가져가더니 열심히 섞고 있다. 알베로, 화이팅이다. 다시 조커를 뽑아와라. 그리고 패자가 되어 우리를 구원해다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알베로는 루루가 다시 섞어온 카드 2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드를 뽑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제발, 알베로!' '난 오늘 이승하직 하긴 싫어!!" '화이팅!'
왠지 녀석들의 마음속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여간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알베로는 카드를 뽑았다. 그 직후...
"미안,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모양이군." "아...!!"
알베로가 두손의 카드를 땅에 내려놓았다. 에이 카드 두장이였다. 그것은 곧... 나를 포함한 녀석들의 표정이 절망에 휩싸였다. 앞으로 다가올 지옥이 눈 앞에 보이는 듯...
"쳇, 또 져버렸네... 역시 알베로 오빠에겐 당할 수가 없네요. 제가 졌어요. 약속대로 오늘 저녁은 제가..." "아, 나 약속을 잊고 있었어. 오늘 저녁은 스리에랑 같이 먹기로 했거든. 그런고로 나는 오늘 이만..." "아, 나도 잊고 있었네. 미소녀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받았었어." "아아~ 나도 나도!"
루루가 말을 하자마자 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녀석들도 동참해왔다. 그 말에 알베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침묵했고 그런 상황에 루루는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언니 오빠들... 제 요리는 싫어서 그러시는 거에요? 저 요즘 노력하고 있는데...흑." "루루야, 그게 아니고... 오늘 정말로 스리에랑 약속이 있어서..." "그래그래, 깜빡하고 있었어. 저녁이 꼭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다음에...응?"
울먹거리는 루루를 달래려고 말을 걸자 리즈나도 가세했다. 그러자 루루가 기분이 좀 나아진듯 웃어보였다.
"할 수 없네요. 그럼 다음 기회에 제가 차려볼게요." "아...아, 그래..."
울적해진 루루를 달래기에는 좋은 대사였다만... 어이, 리즈나여... 다음에라고? 다음 따윈 없어...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지 머리가 아파져서 머리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물론 리즈나와 루시안도 표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쓸데 없는 것들을 주고 받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이런 쓸데 없는 교환들도 나쁘진 않다. 일상이 왜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일상이니까 좋다고 답해주겠다. 그런 일상을 즐기고 있으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거짓같이 느껴진다. 그래, 모두 거짓말 같아 라고. 좀 쉬어볼까 하고 눈을 감아보았다. 그러다보니 잠이 몰려온다. 이런 나른함 왠지 나쁘지 않은데... 그러려는 찰나, 알베로의 품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여, 대장. 전화오는데?" "아아, 알고 있다."
루시안이 지적해주자 귀찮다는 듯 알베로는 느긋하게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알베로가 조용히 통화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사무적인 멘트였지만 통화가 길어질수록 표정에 긴장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도... 한동안 통화하던 알베로는 조용히 종료버튼을 누르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 건은 없던 걸로 해야 할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 알베로." "그래, 생겼지. 그런고로 오늘 저녁은 패스다."
그 말을 들은 루루는 상심한 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아쉬운 감정이 남아있던 것일까. 이쪽은 전혀 아쉬운게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갑자기 무슨일인데?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고. 응응, 울지마. 착하지."
리즈나가 침울해있는 루루를 다독거려주며 묻자 알베로는 조금 불편한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갑자기 들어온 의뢰인데 조금 석연치가 않아서 그렇다." "무슨 의뢰인데?" "아는 사람의 의뢰인데 도시 동쪽 외곽에 있는 발전소 쪽에서 무언가 일어난 것 같은 모양이야. 의뢰 내용은 단순한 정찰인 모양이지만..." "이지만?"
리즈나가 재차 물어오자 알베로는 모두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나의 단순한 감이다만 이번 의뢰는 단순한 정찰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동행자가 있는 모양인데 그 동행자들이 일반인이 아닌 정부소속 군인들이야." "흠..."
그 말에 모두들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했던 의뢰중에 자신들 이외에 누군가와 협력했던 적은 있었지만 군인이라니... 찝찝하지만 뭐 어떤가? 그동안 깨끗한 의뢰만 했던 것도 아니고...
"보수도 꽤나 파격적이였어. 우리 팀원들이 5년 내내 먹고 놀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의 금액이였다." "그래서 의뢰는 받았나?" "아직 결정하진 않았어. 카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군인들이 있다는게 조금 찝찝하지만 그 보수라는거 일시불인가?"
어떤 통이 큰 의뢰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많은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건가? 의심이 들어 물어봤더니만 알베로는 안심하라는 듯 나에게 답했다.
"의뢰를 수락하는 즉시 입금해주겠다는군. 확인해보면 알겠지." "그런가, 그럼 난 찬성이다." "그래, 나머지는 어떤가?"
알베로는 나의 답변에 만족했다는 듯 이번엔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야기 하자 루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대장이 가져온 일이니까 나도 찬성." "아, 나도 찬성. 이번 일이 끝나면 싸구려 술 말고 우리도 고급 술좀 먹어보자 응?"
루시안의 말이 나오자마자 리즈나도 바로 답해주었다. 저 녀석, 언제는 싸구려 술만 먹었다는 듯이 말하네. 둘이 찬성하자 루루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조해주었다.
"그런가? 전원 찬성이니 그럼 이 의뢰는 받도록 하지."
말을 마친 알베로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다. 의뢰는 받은 모양이다.
"그럼, 돈도 들어왔겠다... 그럼 다들 가볼까." "항상 준비 오케이라고." "대장이 제일 준비가 늦은 거 같은데?" "어...?"
알베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녀석들은 벌써 무장이 끝난 상태였다. 통큰 의뢰라서 그런가 이 굼벵이 녀석들이 의외로 재빠른데?
"훗, 다들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군. 역시 돈의 위력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단 말이야. 굼벵이가 날아다니게 하니깐." "날아다니기만 하겠나? 뭐든지 할 거 같은데." "그런가, 다들 다시 한번 체크해봐. 목적지는 도시 외각이니까 감염체들이 상당히 많을 거다. 준비 철저히 하도록." "라져~!"
알베로를 제외한 일동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모두들 각자의 짐을 꾸린 채로 사무실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30분후, 퀸즈타운 동쪽 게이트 앞]
이곳은 퀸즈타운의 동쪽 게이트로 외부와 가장 인접한 곳이다. 그만큼 감염체와의 조우도 많은지라 사상자가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스펙터라는 특급 감염체가 난입한 사건이 있어서 경계가 한층 강화된 상태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스펙터 사건은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었다. 감염체가 게이트의 방어를 뚫고 침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큰 혼란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였다. 경계가 강화된 삼엄한 공기가 흐르는 동쪽 게이트까지 오게된 카인 일행은 무거운 분위기에 움츠러들었다.
"이거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무서워라."
루시안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보려고 시원스레 말해보았지만 그대로 묻혀버렸다.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장병들의 진지함에 압도되었다고 해야할까. 나의 루루도 움츠러들어 있었다. 왠지 안아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만 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렇게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중년의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게이트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현재 게이트는 차단되어 외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중무장을 한 우리들을 보며 군인은 물어왔다. 의도를 알수 없는 모양인지 경계하는 눈치다. 그런 남자를 보며 알베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뢰로 찾아왔습니다. 알베로라고 전해주시면 알겁니다."
의뢰라는 말을 듣자 남자가 경계를 풀며 말을 걸어왔다.
"아, 그렇습니까. 위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남성의 뒤를 따라가다보니 그 앞에는 허름하게 서있던 컨테이너가 있었다.
"여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알베로가 제차 인사하자 남자는 웃음을 보여주며 문에 노크를 했다.
"무슨 일인가?" "지시하신 대로 그 분들을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게나."
컨테이너 안에서는 약간 중후한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문 밖에 서있던 우리들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중년 남성이 책상에 앉아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보급 사정이 약간 좋지 않아 차조차 대접을 해드릴 수 없는 점 사과 드립니다. 여기 의자에 앉으시길."
중년의 남자가 책상에서 일어나며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으며 남자는 무겁게 말을 열었다.
"저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킬머 대령이라고 합니다. 다들 반갑습니다."
남자가 인사해오자 알베로도 같이 인사하며 물었다.
"예, 반갑습니다. 개요는 듣고 왔지만 정확한 상황은 듣지 못했습니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네, 외부에 있는 제3발전소는 저희에게 발전소의 상태와 안전상태등을 매일 보고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별일이 없는 것 같았지만 수상한 점들이 여러 개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인데 먼저 아침에 있었던 정전 사태에 대해서 입니다. 일부 지역에 10분간 정전사태가 일어 났었는데 그 지역들은 제3발전소가 담당하고 있던 구역이였습니다. 기상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 될 점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킬머라고 하는 자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진공청소기를 돌리려고 했는데 전기가 나가서 써먹지를 못했었지, 그런 이유였군. 생각에 잠기는 동안에도 킬머라고 불린 남자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두 번째는 저희가 움직이게 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저희는 발전소에 연락을 했고 발전소는 잠시 문제가 있었지만 정상화 되었다고 답해왔습니다만..." "무언가가 있었다는 겁니까?" "네, 보내온 전문에서 무언가 구조를 보내는 듯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장의 첫 글자들에서 도와주세요 라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전문입니다."
킬머 대령은 그 말과 함께 문서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받아보고 읽던 알베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무슨 내용이길래?"
알베로의 손에 있던 문서를 가져와 읽어보았다.
(도)시의 정전사태에 대해 보고합니다. 번개(와)돌풍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망가진 (주)부품들을 교체했습니다. 갑작스런 (세)찬 돌풍이였을 뿐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확실히 도와달라고 써있군..." "그러게." "이녀석들 센스있는데? 하마터면 모를 뻔 했어."
멤버들의 중얼거림에 킬머 대령은 모두 이해한 것으로 알고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답신을 받은 후 주둔중인 병력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합니다." "기상악화로 인한 문제는 아닙니까?" "그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원인이 확실하지 않아 정찰을 하고 오라는 위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작전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알베로의 물음에 킬머 대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내 답했다.
"2개 소대 정도의 병력으로 움직입니다. 아무래도 먼 곳이고 보통 감염체가 나오는 곳이 아니다보니 정예병만 추렸습니다. 혹시 몰라서 실력있는 여러분도 초대했습니다. 어떻게 임무를 수행 할것 이냐면..."
킬머 대령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브리핑이 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시각, 퀸즈타운 동쪽 외곽 숲 제3발전소]
발견한 지하통로. 어디론가 이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몇 개월간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도시 외부의 어떤 장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서 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여러 공작과 첩보활동으로 겨우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곳에 발을 들이자 직감했다. 그래, 이곳은 내가 있었던 그 곳과 비슷한 느낌이야.
지하통로로 발을 내딛은 소녀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는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전기를 받아 무전을 쳤다.
"무슨일이십니까, 마스터." "아, 칸자키님. 아무래도 여기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무전이 끝나고 소녀는 동료들과 잠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칸자키라고 불린 여성이 소녀의 눈 앞에 드러냈다.
"오셨어요,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불렀네요." "그런가요." "네, 지금 제 옆에는 아무도 없어서요. 칸자키 언니라도 있어야 맘이 편하겠네요."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옆에 계시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되요. 그럼 갑시다." "앞장 서겠습니다, 마스터." "네, 부탁드려요."
칸자키가 앞장서서 나아가자 소녀와 무리들이 뒤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앞서 걸어가던 칸자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슨일이에요 언니?" "기척이 느껴집니다, 무언가가 저 너머에 있습니다."
칸자키는 잘 보이지 않는 통로 너머를 가르켰다. 소녀는 느끼지 못했지만 칸자키의 말에 일단은 수긍했다.
"괜찮을까요? 저는 잘 안보이는데요." "조심히 따라오시길, 아마도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
걸어가던 칸자키가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소녀를 껴안고 물러났다. 물러선 그 자리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들이 꽂혀있었다.
"이건?" "감염체입니다, 주의 하시길." "네, 사격 개시!"
소녀의 말과 함께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총을 꺼내들어 쏘았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허공에 난사하는 꼴이 됐지만 일부 명중한 것인지 괴성과 함께 무언가 쓰러지는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슈욱-
"윽!!"
총을 쏘던 남자가 날아온 무언가에 스친 듯 갑자기 쓰러졌다. 소녀가 그것을 보자 남자를 부축했다.
"괜찮으신가요?" "아, 괘...괜찮습니다. 조금 스친 것 같습니다." "스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쓰러진 남자의 다리가 심하게 찢어져 피가 세어나오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옷을 찢어 급히 상처부위를 묵어주었다.
"으...윽! 이러지 않으셔도." "가만히 계세요. 일단 뒤로 물러나계세요."
쓰러진 남자를 뒤로 보낸 뒤 소녀는 일어나 앞으로 다가갔다. 그것을 본 칸자키가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어떤 감염체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데 함부로 나서시면 곤란합니다. "저도 나서야죠, 동료들이 당하는 걸 눈뜨고 볼 수만은 없잖아요?" "하지만..." "맡겨 주세요."
걱정하는 칸자키를 뒤로하며 소녀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일행이 사격을 중지했다. 총성이 멎으며 먼지가 가라앉자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길을 막고 있었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 감염체 같은데요. 이런 감염체는 본 적도 없습니다."
소녀와 칸자키는 눈 앞에 있는 감염체를 보며 놀랐다. 모든 감염체가 인간에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눈 앞에 있던 것은 상상을 깨는 것이였다. 마치 여러 가지 생명체를 조합 해놓은 듯한...
"역시 제대로 온 것 같아요. 발전소 내에 괴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있다는게 뭔가 수상합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우리가 찾던 그가 있는 듯 합니다." "다행입니다. 헛걸음이 아니게 됐군요."
칸자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자 소녀도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감염체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눈 앞에 있는 이것부터 치워볼까요."
소녀의 당당한 선언과 함께 소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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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요약 스펙터와 치명상을 입은 카인, 그를 도와 스펙터를 저지하려던 지성조차 스펙터에게 무력화 당한다. 죽음의 문턱을 두드리려는 찰나,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하여 스펙터를 쫒아내게 된다.
"아직도 날 못믿겠나요?" "크...확답은 해줄 수 없군." "유감이네요, 일단은 동료일텐데요." "동료가 아니야,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였으니까."
피를 머금은 입에서 나온 말에는 상냥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로지 적의를 가득담은 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 그런 남자의 등뒤에 앉은 소녀. 소녀, 마스터라고 불리우는 그녀는 남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에게 물었다.
"다음에 보게되면 우리는 어떤 사이가 되는걸까요?" "답을 알면서 물어보는 이유가 뭐지?"
남자의 무뚝뚝한 말에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랑 카인씨는 친구가 될 수 있을거 같아서요." "친구라...확실히 일상에서 평범하게 만났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오빠와 동생으로써." "오빠, 이거 어감이 좋네요." "적에게 그런 소리를 듣자니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말을 내뱉은 후 남자는 끙끙거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던 총을 집어 장전하며 일어났다.
"그래도 죽기 전에 미소녀에게 오빠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나쁘지는 않군." "전 상대가 미소년이 아니라서 불만인데요."
소녀의 뾰루퉁한 말에 총의 상태를 확인하던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녀에게 말했다.
"어쩌겠나, 난 미소년이 아니고 그저 차가운 도시청년이니까 봐달라고."
피투성이의 남자, 카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카인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총구가 전방에 있던 문을 향해 불을 뿜었다. 잠시 후, 눈 앞에 있던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11년 7월 3일 월요일 오전10시, 퀸즈타운 동쪽 C지역 4지구 Hearts 사무실]
변함없이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다. 요즘 비가 계속 오고 있다. 덕분에 사무실 내에 습기가 가득 차있는 느낌이 든다. 자칫하면 곰팡이라던가 각종 박테리아님들이 자리를 틀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랄까? 한동안 방치된 건지 일부러 안치운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좋지 않다.
"이 녀석들... 사무실 관리도 안하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 거지?"
간만에 캐주얼한 정장을 빼입고 출근했는데 사무실에는 나를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마담인 알베로 녀석조차 공석인걸 보니 무슨 일이 있던걸까? 아무래도 좋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다. 곰팡이가 피는 것만은 사절이다. 구석에 내팽겨쳐져있는 청소기가 눈에 들어왔다. 한숨이 나온다. 구석에 있던 그 청소기에도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건 심하군... 루루는 깔끔한걸 좋아하는지라 이러지 않을텐데. 한동안 오지 않은건가?"
뭐 어때, 일단 사무실좀 치워볼까. 치운 후에 알베로에게 전화라도 해보지 뭐. 그렇게 중얼거린 카인은 진공청소기의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지금으로 부터 약 7시간전, 7월 3일 새벽 3시. 퀸즈타운 동쪽 외각 숲]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복면을 쓴 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수는 어림 잡아 50~60명 정도. 그들의 어깨에는 그 유명한 AK47 소총이 걸려있었고 허리춤에는 하나같이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구르카 칼이 달려있었다. 언핏 보면 중동지역의 테러리스트 단체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피부 색깔은 사람마다 달랐다. 세계의 모든 이방인이 이 곳에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무리중에서 떨어져 나와있던 한 소녀와 청년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청년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아직까지는 큰 변화는 없어보입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청년의 보고에 안심이 됐는지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청년은 안심하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
"이대로라면 작전은 문제 없이 성공할 듯 싶습니다. 방비도 평소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큰 피해 없이 끝내겠네요. 다행입니..."
갑자기 소녀의 말이 도중에 중단됐다. 청년은 그런 소녀의 용태를 보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선 어떤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걱정스러운지 청년이 몸을 살짝 숙여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럼, 슬슬 출발할까요?" "예, 마스터. 준비하겠습니다."
소녀의 말에 청년은 우아한 포즈를 지으며 경의를 표하며 청년이 무리중으로 달려갔다. 어느 새 혼자 남은 소녀는 무언가에 생각에 빠진 듯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자크님, 그럼 먼저 움직여주세요."
소녀가 고개를 들어 입을 열자 전방의 공간에서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나며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그 영상에는 낯이 익은 자가 서있었고 그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마스터에게 저의 등뒤를 맡기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소녀는 이자크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무리가 있는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소녀의 등은 한없이 외로워보였지만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겨우 찾아온 기회야, 절대로 놓치지 않겠어.'
소녀는 자신의 주먹을 불끈쥐며 무언가에 다짐하는 듯한 행동을 하더니 이내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의 무운을 빕니다. 부디 죽지마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소녀의 말과 함께 무리들의 큰 함성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소녀는 눈을 감더니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그럼 전진!!"
소녀의 말과 함께 나무가 울창한 깊은 숲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1시간 후 , 11시. Hearts 사무실]
"휴, 이제야 좀 깨끗해졌다."
청소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진공청소기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기계가 망가진줄 알았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정전인가. 덕분에 빗자루로 팔이 뻐근해질 정도로 신나게 쓸었다. 그 후 대걸레질은 수월했지만...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공기와 빗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사무실의 상태가 맘에 드는지 카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알베로의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후아, 역시 알베로 녀석의 의자가 최고라니까."
의자에 늘어진 채로 앉아있던 카인은 가슴팍에 있던 담배를 꺼내들어 불을 붙이며 눈을 감았다. 새하얀 연기가 주변을 하얗게 물들여갔다.
'근래에 너무 편하게 잘 쉬어서 몸상태가 좋긴 좋네. 그나저나 지성이라고 했던 녀석은 갑자기 왜 사라진 것일까...?'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녀석과 싸운 이후로 만났던 지성과 지연이라는 녀석들은 병원에서 며칠 후 간단한 인사와 함께 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보자는 말과 함께 말이다. 분위기 있게 사라지던 녀석들이 인상깊게 남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분명히 그날에 기억으로는 녀석과 싸우다 기억이 사라졌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 같은데 빈사 상태에서 스펙터를 이겼을리가 없다. 죽는게 당연했을텐데 지금 난 이렇게 살아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싸구려 담배를 피고있다.
'지성이라는 녀석이 스펙터를 처치했을 리도 없다. 바로 내 옆 침상에 정신을 잃은 채로 같이 누워있었으니까. 지연이라는 녀석도 스리에를 피신시키느라 돌아와 지원을 할 여력은 없었을 거다. 그런데 스펙터는 사라지고 없고. 내가 살아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
곰곰히 생각하던 카인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힘차게 빨아들였다.
" 다음에 만나면 지성이라는 녀석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봐야겠군. 젠장, 벌써 필터까지 다 폈네."
카인이 재떨이에 담배를 버리고 담배 한 개피를 더 꺼내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여, 카인. 그러고 보니 오늘이 퇴원 날이였지? 퇴원수속은 잘 밟았나?"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며칠 전에 봤던 알베로였다. 녀석은 변함없이 재미없는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다. 물론 그 녀석 뒤에는 언제나 시끌 벅적한 3인방도.
"돌아올 때 혼자여서 심심했지만 뭐 어때. 여, 거기 뒤에 똘마니 3인방도 간만." "어이 카인? 일단은 똘마니는 맞는데 그 어투는 좀 거슬리는데?" "우리 카인이가 아직도 아픈가봐. 맴매 맞을까?" "너무해요..."
주먹을 굳게 쥐고 있는 루시안과 리즈나 그리고 녀석들 뒤에서 울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루. 아, 루루를 또 울려버리는건가.
"휴... 다들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닌거야? 사무실도 내팽겨쳐두고 말야. 덕분에 내 오른팔이 울고 있다고."
카인은 푹신한 의자에 거만한 자세로 앉은 채로 팔이 뻑뻑한지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그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청소 하나좀 했다고 거만하게 앉아있다니.
"아무래도 카인 녀석 아직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정신 좀 차리게 해줄까?"
루시안이 목소리를 깔며 온몸의 근육을 풀자 리즈나도 맘에 안드는지 맞장구를 쳐줬다. 루루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그래, 퇴원빵 해야지~? 퇴원을 했으면 신고를 해야지. 그래야 축하해주잖아?" "제가 봐도 카인 오빠가 좀 이상해요... 병원 다녀오시더니 더 이상해졌어요."
이...이 녀석들이...? 어? 루루야?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이상하다고? 루루안의 내 이미지는 도대체 어떤거야? 나 상처받았어...
3인방이 조금씩 다가온다. 거기에 은근히 거구인 알베로도 가세. 울적했던 기분이 점점 공포로 바뀌어간다. 어이, 봐달라고. 난 2시간 전만 해도 환자였다고.
"잠ㄲ..."
무언가 커다란 손바닥 같은 것이 얼굴로 다가왔다. 그와 함께 둔탁한 충격이 머리에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7시간전, 7월 3일 오전 4시. 퀸즈타운 동쪽 외곽 숲 제3발전소] 과거에는 도시였던 자리지만 이제는 나무만이 울창하게 자라난 깊고 깊은 숲 속 그 곳에는 과거에 건설되었던 발전소가 있었다. 지금은 정부가 리모델링하여 제3발전소로서 기능하고 있다. 주 원료는 하트. 이 발전소는 퀸즈타운 내에 있는 발전소 들과 달리 하트 공급이 수월 한 편이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것이 단점이지만. 주변의 숲에는 꽤 많은 감염체들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트를 획득 할 수 있는 사냥터이기도 했다. 하트가 연료로써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안 정부는 즉시 발전소를 리모델링과 병력을 배치했다. 그 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발전소로 자리 잡아왔다. 고요하고 적막한 숲 속에서 발전소는 오늘도 가동중이였다.
"제압했습니다,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 수비병력 전원 사살. 들어오셔도 됩니다."
무전기에서 칙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이제 드디어 도달한 것인가...
"고생하셨어요, 이자크님. 혹시나 해서 모든 가족분들을 데려왔는데 기우였을까요?" "그런 마스터님의 원조 덕분에 제가 이렇게 마음이 든든한걸요. 감사할 따름 입니다." "이자크님 아부도 참 잘하시네요. 후방에 지원병력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후방 경계 부탁드릴게요."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칙칙한 기계음이 끝나자 무전기를 들고 있던 소녀, 마스터는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 뒤에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녀 일행이 발전소 상황실로 들어가자 발전소 직원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하던 일을 멈추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이 곳은 일반인 출입이 허가 되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알고 있지만 실례를 무릎 쓰고 찾아왔답니다."
직원 일행 중에 중년 남자가 소녀에게로 걸어와 말을 걸자 소녀는 조신한 말투로 대답해주었지만 남자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는 총을 들고 무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혹시 테러입니까?" "아니에요, 그런 목적은 아닙니다만 무언가 조사를 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남자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오자 소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기밀이라서 자세히 답변해드릴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에게 특히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에요. 여러분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하는건 신경 안써주셔도 될거 같아요."
말을 마치고 소녀는 뒤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에 계시는 분들이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지시하는 분들은 제가 지정한 장소로 이동 부탁드려요." "예."
소녀의 지시에 지목된 몇 인원들은 건물 바깥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인원들은 두명씩 짝지어 직원들 옆으로 움직였다.
"업무에 지장은 안드리지만 외부로 연락은 안될 거 같아요. 양해 부탁드려요."
총을 든 무리는 직원들의 품을 뒤져 외부와 연락이 될만한 물건들을 모두 회수했다.
"죄송합니다. 볼일이 끝나면 떠날 예정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평소 하시던 대로 일하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소녀가 직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자 대부분은 두려운지 떨었지만 몇 인물들은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주변 상황이 정리 된 것을 확인한 소녀는 자신의 옆에 있었던 장신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칸자키님, 저기 계시는 직원분들 모두 잘 부탁드려요. 너무 심하게 하지 마시구요." "네, 마스터."
소녀의 말에 칸자키라고 불리는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상황실 한편이 시끄러워졌다.
"마스터, 찾았습니다. 건물 맞은편 장소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요? 수고 많으셨어요."
부하의 보고에 소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감사했다. 부하도 방긋 웃으며 물러났다.
"가시는건가요, 마스터." "네, 가야죠. 그럼 이곳을 잘 부탁드려요. 나머지 분들은 따라오세요." "다녀오십시오."
상황실에서 멀어지는 소녀를 보며 칸자키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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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일 목요일 오전 00시 30분, 퀸즈타운 북쪽 B지역 2지구 제2 국립 의료원 4층 복도]
복도에는 적막감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 새벽의 학교 복도만큼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와는 다른 느낌이 존재했다. 무언가 불쾌함이 느껴지는 끈적함과 살기 어디선가 덥쳐올지 알 수 없는 그 괴물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의문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 지금 걷고 있는 복도에 있는 방들에서는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다.
"카인..."
스리에가 불안한듯이 카인의 옷을 붙잡자 카인은 손을 잡아주었다. 불안할 것이다. 방금 전에 그 참상을 봤을 것이다. 눈을 가려주었지만 가리기 이전에 스리에의 눈이 1층 로비 출구쪽에 향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조차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였는데 일반인인 스리에는 오죽할까 토막살인은 아까의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거의 분해수준이다. 그냥 산산조각을 내버렸다고 해야할까? 자신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겠지...
"걱정마, 4층까지 내려왔는데 별 문제 없잖아. 이대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될거야. 상황의 여의치 않으면 3층쯤에서 뛰어내려도 될테고." "으...으응."
카인의 말에 스리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카인은 그 손을 꼭 잡아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카인 일행은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피하면서 이동하다 보니 한 층 내려오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도착하자 카인은 뒤에서 따라오던 지성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이, 혹시 미행 당하거나 그런 기미는 없었나? 적어도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사방의 녀석의 채취가 남아있긴 하지만 희미한 것을 보니 여긴 없는 모양입니다." "채취라니...개도 아니고." "…오감이 발달하다보니 후각도 꽤 좋아져서요."
카인의 말에 지성은 찝찝했는지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카인은 미안하다는 듯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사과하지, 그럴 뜻은 없었다고." "괜찮습니다. 자주 들으니까요."
한숨어린 지성의 말에 카인은 수긍했다. 고분고분한게 꼭 애완견 같기도 하고 말이다. 카인은 주변을 살펴보며 지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여기서 내려가면 3층인데 창문에서 뛰어내리는건 어때? 3층 정도라면 무리는 없고 스리에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죠. 여기서 한층한층 내려가다가 녀석을 만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가시죠."
대화를 마친 일행은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내려가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3층에 도착한 카인 일행은 인적이 없는 듯한 으슥한 곳으로 잠시 모여앉았다. 카인은 모두를 둘러보더니 지성과 지연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일단은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 같아. 녀석이 쫒아온 것 같지도 않으니 이쯤이면 성공한거야. 여기서부터는 창문으로 뛰어 내린 후에 전력으로 이곳을 탈출하자. 탈출해서 치안 유지군에 연락하지. 뒷일은 그쪽에서 처리해줄거야. 이의 있는 사람?"
카인의 말이 끝나자 동의한다는 듯이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그럼 일단 지연이라고 했던가? 아가씨가 먼저 뛰어내려서 주변을 살펴본 후에 스리에를 받아줘." "네, 그렇게 하죠."
카인의 말에 지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인은 지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나와 지성은 둘이 뛰어내리기 전까지 뒤에서 엄호하고 둘이 무사히 뛰어 내리면 같이 뛰어내리기로 하지." "그러죠."
지성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고 카인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들 살아서들 보고... 거기 지연아가씨는 아래에 먼저 내려가서 스리에좀 잘 받아줘. 스펙터가 밖에 서성거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모두들 동의한 듯 하자 카인은 지연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만약 우리가 스펙터와 마주치게 된다면 스리에를 데리고 여기서 빠져나가줘." "음..."
카인의 말에 지연이 살짝 고민하는 듯 머뭇거리자 카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은 듯 지성이 지연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난 걱정하지마. 솔직히 스리에씨를 방치하기도 뭐하고... 난 싸우면서 남 돌보는 건 잘 못하니까 부탁해." "으...알았어. 그렇게 해줄게."
지연이 수긍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카인은 단검을 고쳐쥐며 일어났다. 카인이 일어서자 일행은 모두 일어서 창문가로 향했다. 그리고 지연이 먼저 뛰어내렸다. 카인이 3층에서 밖을 내려다 봤다. 지연은 무사히 착지한 모양이다. 밖에서 녀석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지 지연은 카인쪽을 바라보며 ok표시를 해주었다. 지연의 신호를 본 카인은 스리에의 옆으로 다가갔다.
"스리에, 먼저 가. 뒤따라 갈게." "응... 뒤따라와줄거지?" "그래, 걱정 마.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지켜주겠어?" "지켜준다면서 맨날 방치하는게 누구인데..." "……"
...뭔가 분위기 있는 말을 하려는데 초를 친다. 이 녀석은 남자를 초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
"걱정마, 이번에는 반드시 지킬테니까. 먼저 내려가." "응!"
힘차게 말하고는 스리에는 창문가로 다가갔다. 열린 창문을 통해 지상이 보였다. 크게 높은 위치까지는 아니지만 뛰어내리기에는 부담스러운 높이이기도 하다. 약간 망설이는 스리에를 보며 카인은 등뒤를 두드려주었고 밖에 있던 지연 또한 손짓을 해주자 스리에는 용기를 얻은 듯 창문가에서 뛰어내렸고 지연은 스리에를 조심스레 받아주었다. 스리에가 무사히 착지한 것을 보자 카인은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지성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할말이 있는데 말이지." "무슨 말입니까?"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지성은 카인이 갑자기 어깨를 붙잡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당신도 찝찝하지 않나?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두고 가는 거 말이야."
카인의 말에 지성은 약간 표정이 굳어진 채로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환자들도 많고요. 지연이를 돌봐주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계시는데 저희만 탈출하는 것도 좀 그렇지요." "내 생각도 그래, 그래서 여기서 제안을 하나 하겠는데." "제안이라 하시면?" "이자리에서 녀석을 없애는게 어때?" "…멋진 제안입니다만, 과연 우리가 녀석을 없앨 수 있을까요?"
제안이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문에 찬 표정을 짓자 카인은 지성에게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어렵겠지만 가능성은 있어. 잘 생각해봐, 지금 여기에는 나와 당신 둘 뿐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전력이 줄어버렸는데 가능성이 있다고요?" "흠...역시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는건가..."
이해를 못하는 지성에게 카인이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주었다.
"아까 얘기한걸로 종합하자면 스리에와 댁마님은 녀석에게 상처조차 낼 수 없어. 강화탄환을 쓰지 않는 한 말이야. 보아하니 강화탄환은 아닌 모양이고... 전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안고서 녀석과 싸우는 건 오히려 짐이 될 뿐이야. 녀석을 보호하려고 신경쓰다 보면 틈이 생겨서 결국은 패하겠지." "그래서...요?" "나와 당신은 녀석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무기가 있단 말이지 당신 등 뒤에 있는거 말이야."
말을 마치며 카인이 지성의 등 뒤에 있는 장검을 가르켰고 그와 동시에 단검을 꺼내들며 말을 이었다.
"이 단검과 그 장검은 하트를 첨가한 강화 금속을 이용해 만든 무기니까 녀석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지도. 아니라면 전력을 다해서 도망쳐야겠지. 어때? 한번 시험해보겠나? 당신도 하트헌터라면 저런 막강한 녀석 하나쯤은 처리해보고 싶지 않나? 언제까지 쪼잔한 녀석들만 잡아서 살아갈건가?" "……"
약간은 도발적인 카인의 말에 지성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발때문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성은 결심했다는 듯이 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저도 남자인데 한탕 크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이 그 기회가 아닐까 싶네요. 해보죠." "좋아, 잘 생각했어. 잘 해보자고."
둘은 서로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카인을 바라보는 지성의 눈빛에는 공포가 아닌 어떤 것도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그런 지성을 보며 만족한 듯한 카인은 지성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한 작전을 한번 말해보지. 일단은 이런 좁은 복도에서는 녀석을 상대 할 수는 없어. 녀석도 움직이기 힘들겠지만 우리도 움직이기 힘들거야. 녀석은 맷집이 단단하지만 우리는 아니야. 한방에 끝이라고. 그러니까 활동하기 넓은 곳으로 유인해서 끝장을 봐야 해. 그렇다고 녀석을 밖으로 유인했다간 대형 참사가 날지도 모르니 1층 로비로 유인해 내자고. 거기가 그나마 넓으니까."
카인이 자신있게 말하자 지성은 감탄한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과연, 그렇군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누가 유인 합니까?" "내가 유인하지, 녀석의 행동 패턴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당신은 내가 끌고 오는 동안 1층에서 잠복하다가 기습해주면 좋겠는데." "왜 카인씨가 유인을 합니까? 기습이라면 빠르고 날렵한 사람이 더 제격이 아닙니까?"
카인의 말에 지성이 이의를 제기하자 카인은 더 들어보라며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당신은 꽤나 검을 잘 쓰는 것 같던데... 특히 순간적으로 뽑아치는 그 검술 말이야." "아하하...그럴리가요. 부끄럽네요."
쑥쓰러운듯 머리를 긁는 지성을 보며 카인은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만났을 때 자신에게 쏘아지던 지성의 검 가속의 힘이 아니였다면 아마도 두동강이 났을지도 모르는 빠른 발검술이였다. 이런 녀석이라면 내가 주의를 끄는 틈에 기회를 엿봐 일격을 날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녀석과 대치하면서 치명상을 입힐 자신은 없다. 거의 본능적으로 익힌 검술이라서 전문적으로 배운 군인들이나 검사들에 비하면 훨씬 질이 떨어진다. 녀석이라면 해낸다. 그렇게 믿었다.
"내가 주의를 끌겠어. 하지만 오래는 힘들거야. 틈을 만들어 볼테니 그때를 이용해서 녀석을 공격해. 기회는 한번 뿐이야." "그렇군요, 달리 방법이 없네요. 어려운 것 같지만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녀석을 찾아볼테니 당신은 1층 로비에 잠복해있으라고." "네, 그러죠.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살아서 보자고."
말을 마치고 둘은 헤어져 각자 위치로 향했다.
[같은 시각, 퀸즈타운 북쪽 B지역 2지구 제2 국립 의료원 외부]
"갑시다. 여기서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 "네? 카인은 어쩌고요?"
병원 바깥에 남겨진 스리에와 한지연. 그 둘은 밖에서 카인과 지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연은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일이 있을겁니다. 좀 늦어질지도 모르니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서 근처 치안대에 구조요청을 해야겠어요." "일이라뇨? 설마...그 괴물이랑 카인이 싸운다는 건 아니죠?" "시간이 없습니다. 가야해요."
지연이 스리에의 손을 잡아끌며 움직이려고 했지만 스리에가 발에 힘을 주며 저항했다."
"말도 안되요!! 그런 괴물이랑 어떻게 싸워요!! 저러다가 카인이 죽을지도 몰라요. 이거 놔요!!"
스리에가 의외로 거칠게 저항하자 지연은 스리에의 손을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생각이 있으니까 싸우는거겠죠. 아무 생각도 없이 무리하게 싸우는건 아닐거에요." "생각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아마도 카인은 병원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걱정되서 무리하게 싸우는게 분명해요. 말려야겠어요! 이거 놔요!!"
짝-
날카로운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스리에는 따끔한 충격에 그만 정신을 놓을 뻔했다. 지연이 스리에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차려요, 걱정이 되는건 알겠지만 이대로 우리끼리 탈출하는 건 옳지 않아요. 카인이라는 분은 사람이기 이전에 하트헌터에요. 그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위해 행동하는 그를 막지 마세요." "아...아...그, 그렇지만..." "저도 그이가 걱정되요. 하지만 믿고 있어요. 무사히 돌아올거라고요." "흐...흐으흑...흑" "자자..."
지연이 울려는 스리에를 안아주며 상냥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솔직히 우리가 여기에 있는건 방해에요. 우리를 지켜주려고 하다가 당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없는게 도와주는 거랍니다. 가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해요." "정말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스리에가 불안한듯 지연의 품에서 흐느끼자 지연은 확신에 찬 소리로 말했다.
"그이는 날 버리고 먼저 갈 사람이 아니에요. 약속했으니까요."
그 말을 하고 있는 지연의 뺨에도 조금씩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퀸즈타운 북쪽 B지역 2지구 제2 국립 의료원 2층 복도]
침조차 삼킬 수 없는 긴장감 서서히 몰려오는 공포감 틀림 없다. 이 앞에는 녀석이 있다.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녀석이 그런 녀석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발버둥을 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두 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이번에야말로 녀석에게 갚아준다. 철저히 부셔주겠다. 짓밟혔던 내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의 한계를 넘어보이겠어.
'그나저나 녀석은 잘 도착했을까? 나보다 먼저 스펙터를 만나면 곤란한데...'
카인은 손에 쥐어진 단검에 힘을 주며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뛰어갈 수 있도록 몸을 풀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눈앞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 머지 않은 앞에서 무언가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하면서 주변의 공간과 어우러지는 현상 스펙터다.
"…오랜만이군, 스펙터."
눈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스펙터가 돌아보더니 이내 카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본 것처럼 느껴졌다.
"그르르르..."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카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듯 스펙터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이내 카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슈악!
날카로운 파공성이 공기를 가르며 카인에게 접근해왔다. 카인은 급히 몸을 틀어 피하면서 단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챙!!
휘두른 단검이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부딪혔다.그 충격으로 카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큭!! 장난이 아닌데."
거의 본능적으로 휘두른 단검이 녀석의 공격을 막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손에 전해져오는 충격은 장난이 아니였다. 순간 단검을 놓쳐버릴 정도의 충격이였다. 역시 정면으로 녀석과 싸우기에는 아직 무리이다. 몸이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약한 인간의 몸이다. 정면에서 부딪힌다면 몸이 성치 못할게 분명했다.
스펙터와 카인이 격돌하자 주변 상황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벽돌이 튀고 콘크리트 더미들이 막 튀기 시작했다.
"크아앙!"
주변 복도가 파괴되어 돌가루와 그 파편이 흩날리자 스펙터는 신경이 쓰이는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카인은 녀석을 공격해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녀석의 급소도 모르는데다가 실패라도 하는 날엔 바로 끝이였다. 스펙터가 머뭇거리자 그 틈을 타서 카인은 품을 뒤져서 수류탄을 꺼내어 스펙터에게 던졌다.
"그르르?"
스펙터 앞으로 정확히 떨어진 수류탄을 확인한 카인은 바로 옆에 있던 소화전쪽으로 잠시 몸을 웅크렸다. 카인이 몸을 웅크리는 그 순간, 수류탄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수류탄이 터지는 중심에 있던 스펙터는 그 액체를 다 뒤집어 써버렸다.
"성공인가, 제데로 터져줬군.이것으로 육안으로도 녀석을 파악할 수 있겠어."
스펙터가 수류탄에 피격된 것을 확인하자 카인은 미소를 지었다. 카인이 던진 수류탄은 정부가 개발해낸 특수 수류탄으로 살상력은 군용 수류탄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수류탄 안에는 특이한 냄새가 나는 유색의 액체가 들어있어서 터지는 순간 액체가 사방으로 퍼지게 되는 무기였다. 도망치는 감염체를 잡기 위해 몇개 사두었던 건데 이런식으로 스펙터에게 사용할 줄은 카인도 몰랐다. 이것으로 스펙터의 은밀성은 대폭 낮아졌다. 육안으로 감지 해 낼 수 있다면 상대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생긴 카인은 녀석을 계속 건드리며 자극했다. 스펙터는 자신을 괴롭히는 카인을 적으로 인식했는지 아까와의 태도하고는 다르게 전력으로 부딪혀왔다.
쿠앙!
"큭!"
스펙터가 카인의 바로 옆 벽을 강타했다. 무사히 피하긴 했지만 튄 파편 때문에 몸 여러 곳에 상처가 났다. 큰 상처까지는 아니지만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서 상처가 누적되면 곤란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되겠지... 녀석은 나에게만 신경을 쓰게 되겠지. 가보자, 합!!'
카인은 기합성을 울리며 순간 스펙터에게 다가가 단검을 휘두른 후에 재빨리 뒤로 빠져 계단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 카인을 스펙터는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쫒아왔다.
챙챙!
카인의 단검과 스펙터의 손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1층으로 이동하는 동안 카인은 스펙터와 여러 번 주고받으며 이동했다. 스펙터는 계단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리며 쫒아왔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 카인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피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복도는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별일이 없다면 녀석이 매복한 채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헉...헉."
1층에 도착한 카인은 숨에 겨운지 가뿐 숨을 내쉬었다. 몸이 성치 않은 상태로 무리하게 능력을 쓰다보니 짙은 피로감이 전신을 덮어왔다. 자신의 바로 뒤에는 흐릿하지만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는 스펙터가 서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2분도 못버티겠군... 앞으로 2분안에 승부를 봐야만 한다.'
카인은 이를 악물고 오른손에 있던 단검을 고쳐쥐며 스펙터를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스펙터도 그런 카인의 약점이라도 찾으려는 듯 아까와는 다르게 조용히 노려보는 듯 했다. 그 둘이 서로 대치하기를 몇 초, 둘은 다시 격돌했다.
"이야야야!" "크아아아!"
카인이 전력으로 뛰면서 스펙터에게 단검을 내리그으며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스펙터는 단검을 피한 채로 뒤돌아 카인에게로 다가왔다. 예상대로 녀석이 피하자 카인은 왼쪽 오른쪽 방향을 계속 틀어가며 스펙터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스펙터는 카인의 스피드에 조금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일부 공격이 먹혀들기는 했지만 큰 충격이 없는 듯 스펙터는 계속해서 카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스펙터의 손톱이 카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대경실색하며 카인은 급히 몸을 틀어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헉...크윽."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여 이리저리 날카로운 공격을 날려보았지만 공격이 제데로 먹혀들지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단검이 녀석의 공격에 버텨내는 정도랄까? 단검이 부셔지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다. 맨손으로는 저런 녀석을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니까. 자세히 보니 녀석도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보였지만 거의 긁힌 수준이라 상처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그에 비해 카인은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다. 녀석의 공격에 직접 타격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손을 움직일 때 일어나는 압력과 파편 때문에 몸 여러 곳에 자잘한 상처가 나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전에 치명상을 입었던 등 뒤에서 시큼한 느낌이 느껴졌다.
'제길...상처가 벌어진건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어...승부다.'
카인은 벽을 집고 간신히 일어섰다. 그의 등 뒤에서는 생명의 원천이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두 다리는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을 뿐이고 단검을 쥐고 있는 손은 경련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한 탓인지 카인의 몸이 임계점에 달한 것이다. 앞으로 더이상 능력을 사용하면 속도감을 이겨내지 못해서 몸이 터져버릴 것이다.
카인은 자세를 낮추며 단검에 힘을 주고 스펙터를 노려보았다. 스펙터는 카인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앞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건 한번 뿐... 간다!!'
"이야야야!!"
괴성을 지르며 카인이 순간적으로 스펙터에게로 튕겨져 나갔다. 스펙터는 개념치 않는다는 듯 그대로 카인에게로 돌진해 들어왔다. 스펙터와 부딪히기 바로 전 카인은 단검을 있는 힘껏 내찔렀다.
푸욱-
카인이 내지른 단검은 스펙터와 부딪히면서 그대로 몸에 박혀들어갔다.
"크웨에에엑!!"
스펙터는 고통을 느꼈는지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카인은 공격이 먹혀든것을 보고 뒤로 물러나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녀석에게 일격을 가한 것 같았다. 이제 녀석도 움직임이 둔해질 거고 틈이 생길 것이다. 마무리는 그 녀석이 해주겠지. 긴장이 풀린 나머지 카인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니, 기운이 다 해서 일까. 카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능력을 과하게 사용한 나머지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성공...인가......큭!!"
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시에 몸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 세포 하나하나가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젠장! 이제 녀석에게 치명상을 입혔는데...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움직여라 몸아! 크아아아!!!'
세포를 하나하나 쥐어짜는 강렬한 고통에 카인은 그저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스펙터는 카인의 공격에 큰 상처를 입은 모양이였지만 아직은 움직일 수 있어보였다. 스펙터는 자신에게 단검을 꽂은 저 건방진 인간을 용서 할 수 없었다. 환상속에 헤메고 있었던 스펙터는 자신이 복수를 해야했던 상대를 잊어버리고 카인에게로만 신경을 집중했다. 일단 저 녀석부터 부셔버린 후에 생각하자라고.
스펙터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카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카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카인은 보지 못했다. 스펙터는 카인의 앞에 바로 서더니 바닥에 뒹굴고 있던 카인을 한손으로 집어세웠다. 그리고 그 손에 서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카인을 부셔버리기 위해서.
"크...크아아아아아아아아!!!!!"
스펙터의 손에 잡힌 카인은 무시무시한 압력에 순간 숨조차 막혀버렸고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비명만 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스펙터는 힘을 주고 있었고 카인의 비명소리가 병원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스펙터가 카인을 있는 힘껏 움켜쥐려는 바로 그 순간- 은은한 은빛선이 1층 로비를 갈랐다.
[같은 시각, 김지성의 시점]
챙챙!
'대단한 싸움이다. 정녕 저것이 사람이란 말인가?'
스펙터와 카인의 격돌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지성은 할말을 잃었다. 저 괴물의 움직임은 자신의 눈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스피드였지만 카인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격돌하는 둘을 보며 지성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카인씨가 알아서 처치할 것 같았다. 그래도 카인의 말대로 틈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들 생각이였다. 슬슬, 스펙터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카인씨가 분발한 탓일까? 이제 슬슬 나가봐도 될 것 같은 상황이다. 바로, 지금! 지성이 움직이려는 순간 카인의 움직임이 순간 둔해졌다. 나가려고 하던 지성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카인이 잠시 움츠려들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리둥절해진 지성은 스펙터를 본 순간 놀랐다. 카인의 단검이 녀석의 몸에 박혀있는 것이였다. 카인은 공격이 적중한 것을 보고 잠시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 돌연 갑자기 쓰러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카인을 보며 스펙터는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 카인을 들어올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카인을 보며 스펙터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아보였다.
'녀석은 지금 카인씨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을터... 지금이다!'
숨죽여 바라보고 있던 지성은 자신의 등 뒤에 있던 검에 손을 올렸다.
[같은 시각, 퀸즈타운 북쪽 B지역 2지구 제2 국립 의료원 1층 로비]
"쿠에에에엑!!"
카인을 움켜쥐고 있던 스펙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카인을 내던져버렸다. 카인은 그대로 벽에 날아가 쳐박혀버렸다. 스펙터는 갑자기 느껴진 짜릿한 고통에 그만 카인을 놓아버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스펙터는 자신을 내려다 보았다. 자신의 등 뒤가 볼썽사납게 찢어져있었다. 그 곳에서는 보라색의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가 서있었다. 그리고 인식했다. 자신이 복수해야 할 상대가 눈 앞에 서있었다. 그 순간 스펙터는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합!!"
지성은 달려오는 스펙터를 향해 검을 내리그으며 오른쪽으로 돌아 스펙터를 발을 내질렀다. 스펙터가 검을 피하려고 몸을 틀다가 지성의 발차기에 강타당해서 잠시 주춤거렸다. 평상시였으면 꿈쩍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치명타에 가까운 공격을 두번이나 얻어맞아 몸놀림과 체력이 많이 둔해져있었다. 지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해서 몰아 붙여갔다.
"하압!!"
지성의 기합소리가 울려질때 마다 은빛의 실선이 1층 로비를 갈랐다. 그럴 때 마다 스펙터의 몸에는 계속해서 상처가 새겨져갔다. 스펙터는 계속 울부짖으며 미친듯이 지성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몸에 찢어지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지성은 스펙터를 상대로 나름 선전 하고 있었지만 죽을 각오로 달려오는 스펙터의 괴력에 점점 압도당하고 있었다.
챙!!
지성이 내지른 장검이 스펙터의 손에 막혔다. 지성은 급히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스펙터는 물러서는 지성을 향해 순간 도약했다. 갑자기 뛰어드는 스펙터를 보며 지성은 대경실색하며 검을 있는 힘껏 위로 휘둘렀다. 검을 휘두른 순간, 스펙터의 육중한 몸체가 지성의 검에 부딪혀왔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지성은 그대로 주르륵 튕겨나갔다.
"헉...헉..."
갑작스런 공격에 지성이 잠시 호흡이 가빠졌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일격에 즉사했을 공격이였다. 호흡을 고르는 사이에도 스펙터는 계속해서 부딪혀왔다. 잠시도 쉴틈을 주지 않고 스펙터는 지성을 몰아세웠다. 지성의 오감으로도 감지 하기 힘든 저 무식한 스피드는 계속해서 지성의 체력을 좀먹어갔다.
'이게 스펙터란 말인가, 대체 카인씨는 이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했던 거지...?'
지성은 검을 맞대어 보고 나서야 느꼈다. 이건 일개 사람이 나서서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의 감염체가 아니였다. 아무리 하트헌터라 할지라도 이녀석과 단독으로는 싸울 수가 없다. 엄청나게 강한 감염체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지성의 몸놀림이 둔해지기 시작했고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펙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지성을 몰아세워갔다. 그러는 와중에 지성은 조금씩 상처를 입어가고 있었다.
지성은 스펙터의 괴력에 어느새 구석으로 몰려버렸다. 지성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벽이 느껴졌다. 바로 앞에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스펙터가 서있었다. 지성의 눈에는 절망이 드리워졌다. 자신의 검술로 어떻게 할 존재가 아니였다.
"이대로 당하는건가..."
벽에 등을 지고 장검을 치켜세우고 서 있는 지성을 보면서 스펙터는 느긋하게 다가갔다. 사냥감을 확실히 침묵시키기 위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사냥꾼의 모습이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스펙터를 보며 지성은 몸을 낮춘채로 기다렸다.
'일검에 모든 것을 건다, 실패는 곳 죽음이다.'
지성은 몸을 낮춘채로 검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녀석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은 서서히 다가왔다. 몇 초 안에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지성은 눈을 감았다. 일격필살의 발검술을 위해 온 몸의 감각을 검에 집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압!!"
지성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지성의 검이 스펙터에게로 쏘아졌다. 스펙터는 지성이 반격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지성의 검을 쉽게 피해냈다. 지성이 검을 휘두르며 무방비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스펙터는 놓치지 않고 돌격했다.
"!!"
찰나에 생겨난 틈을 스펙터가 비집고 들어오자 지성은 절망했다. 검을 회수하기 전에 스펙터가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급히 검을 회수하려는 지성에게 스펙터의 손톱이 작렬했다.
"아악!"
지성의 옆구리를 스펙터의 손이 훑고 지나갔다. 지성의 옆구리가 터져 피가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지성은 이제 자신이 끝장났다고 확신했다. 옆구리에 느껴진 충격과 동시에 검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스펙터는 지성이 치명상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 느긋하게 지성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발을 높이 들어올렸다.
'미안해, 지연아.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지성은 그대로 눈을 감았고 스펙터의 발은 서서히 지성에게로 다가갔다--
…아픔은 없었다. 그저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지성은 자신이 죽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왠지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이 든 지성은 서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싸워왔던 그 공간, 병원이였다-
"??"
어두워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지성은 누어있는 상태로 자신의 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는 어떤 사람이 서있었다. 길고 커다란 카타나를 들고 있는 여성.
"살다보니 별일이네요, 당신이 길바닥에 누어있다는게." "어...칸자키?" "그대로 쉬고 계세요. 금방 끝날테니까--"
말을 마친 여성은 그대로 지성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지성의 의식은 어둠속으로 잠겨갔다.
[약 20분 후, 퀸즈타운 북쪽 B지역 2지구 제2 국립 의료원 1층 로비]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마치 지옥처럼 파해쳐진 주변과는 달리 로비는 매우 조용하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지성은 창가쪽에 서있던 사람을 보았다.
"깨어나셨나요?" "아, 칸자키...인가? 스펙터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잘 안가는 듯 지성이 물어오자 칸자키라는 여성은 지성을 바라보며 답했다.
"스펙터는 도망갔어요. 무척 힘들었지만 지성씨가 치명상을 입혀놓은 덕분에 처치는 못했지만 쫒아냈어요." "그런가... 그런데 칸자키가 어째서 여기에?"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어요." "으...으윽, 내게 물어볼게 있다니?"
지성이 아픔을 참으며 칸자키를 보았다. 칸자키는 온몸이 상처 투성이였다. 아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 했다. 칸자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우리 조직에서 나온겁니까? 너무 갑작스러워서 붙잡지도 못했어요.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그건... 칸자키도 잘 알거야. 우리 조직이 추구하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고 여겼어. 그래서 나온거야, 단지 그 뿐이야."
안타깝게 말하는 지성의 말에 칸자키는 의아한 듯 질문했다.
"당신도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와 함께 했었던 것이고요. 같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했었던 그 맹세를 잊으신거에요?" "물론, 그 맹세를 잊지 않았어. 지금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 하지만 내가 있었던 조직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아."
지성의 말에 칸자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어째서죠? 우리는 여태까지 바르고 옳은 일만 해왔어요. 당신도 잘 알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확실히, 지금까지는 옳고 그른 곳에 힘을 써왔고 행동해왔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왜 아니라는거죠?"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야. 나와 마스터가 단둘이서 길가를 걸어가고 있었어. 마스터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에게 호위를 요청했었고 나는 기꺼이 수락하고 호의해드렸지. 나는 가는 도중에 어느 한 여자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는 굶어서 병들어 있었어. 그 아이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여자아이에게 손을 건내려 했지만... 마스터는 그것을 제지했어. 중요한 일이 먼저라면서 아이들을 버리고 가버리셨지. 난 그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우리들의 마스터는 항상 선하고 현명하신 분이셨으니까, 마스터의 결정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항상 믿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갔어. 아마 그 아이들은 죽었을 지도 몰라. 분명 나에겐 그 아이를 구해야할 이유도 의무도 없어. 하지만 마음 속에서 항상 그것이 날 괴롭혔어. 난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어린 소녀조차 버려야만 하는가 하고 말이야. 과연 대를 위해서 소를 버릴 수 있는 것일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 따윈 무시해도 되느냐 말이지. 요즘 마스터의 행보를 보고선 난 결심했어.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난 대의도 중요하지만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도 중요해. 그런 사소한 것조차 도와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겠어?" "……"
지성의 울분어린 말에 칸자키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지성의 말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자신도 요즘 느끼던 불안한 마음이였다. 칸자키의 슬픈 표정을 보며 지성은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나를 도와준 것은 고맙지만, 혹시 나를 설득하려고 왔다고 하면 거절이야. 미안하지만 난 그 조직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나와 뜻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는 없으니까." "…정녕 그래야 한단 말입니까... 지성..." "미안하다."
슬픔에 잠긴 칸자키를 보며 지성도 울쩍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을 접었다. 다시는 돌아 갈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잊어야만 한다.
"그 동안 고마웠어, 너와 대련하며 실력을 겨눴던 나날들, 우리가 함께 했었던 순간들을 잊지 못할거야." "지...지성..."
칸자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지성 또한 목소리가 떨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작별이다, 칸자키..." "…다음에도 볼 수 있을 까요?"
울먹이며 말하는 칸자키를 지성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거야, 만난 다면 적일지도." "그렇군요..."
칸자키가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서며 말했다.
"슬프지만, 가는 길이 다르니 할 수 없지요. 다음에 보게 되면 당신을 죽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하...그렇게 쉽진 않을 거라구. 이래뵈도 난 꽤 강하다고?" "그랬죠... 그럼, 작별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칸자키는 창가에서 멀어져 현관쪽으로 향해갔다. 서서히 멀어지는 칸자키를 보며 지성은 생각했다.
'작별...인가, 과연 내가 잘한 것 일까..."
지성은 창가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둡지만 희미하게 달이 떠있었다. 지성은 은은한 달빛을 보며 자신의 미래에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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